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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온라인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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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주 4.3사건을 기억하는 이유

제주는 아름다운 관광섬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제주도 전역은 한때 대량 학살이 일어난 곳이었습니다. "제주온라인 기념관" 이 프로젝트는 4.3 사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입니다.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이 사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다..이 프로젝트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로서,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사진을 제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제지에는 아직 피해자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당신, 그리고 이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사건의 악몽을 겪고 있습니다. 4.3 사건은 정치, 이념과 맞물려 있고, 제주는 권위욕과 방임의 희생양이다. 잘못된 점을 고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으며, 이 프로젝트는 제주 지역사회의 평화와 정의를 달성하고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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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개요

제주 4·3은 민간 무장단체와 군부 세력의 충돌로 제주 주민 2만5000~3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일련의 사건이다.

주로 1947년 3월 1일 경찰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이후,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원들이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항의하는 봉기를 일으켰다. 분리선거도 마찬가지다.

타임라인

자유와 좌절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됐다. 9월 9일 일본은 서울의 일본총독부 청사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일장기가 게양됐다.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였다. 일본군은 철수하고 미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유를 향한 열망
1947년

민족차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열망했다. 그들은 자치 활동과 교육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자치운동은 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3월 1일 총격사건 : 4.3사건의 원인
1948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1945년 해방을 기뻐했지만, 2년이 지나도 조국을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북위 38도 이남의 미군정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통일된 독립을 이루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3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를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1948년 3월 1일

행사가 끝난 후 일부 젊은이들은 거리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시위대가 제주 경찰서가 있는 관덕정 광장을 지나가자 총성이 울렸다. 한 어린이가 기마 경찰에게 맞았는데, 경찰은 그 장면을 무시하고 흔들려고 했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관중들은 경찰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시위대를 무시했다. 사람들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즉시 총알이 군중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경찰의 이번 화재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과 초등학생 등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분노의 절정
1947년 3월

정부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정부군은 반군과 동조자로 의심되는 이들을 잔혹하게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공습
1947년 3월 10일

정부군은 반군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력과 탄압 캠페인을 벌이면서 봉기 진압은 수년 동안 계속됐다. 수천 명이 살해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강제로 추방됩니다.

여파와 유산
1948년 4월 3일

1948년 4월 3일 이른 아침, 남로당 제주도당 유격대원 350명은 제주도의 12개 경찰주재소와 우익단체를 공격하여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화해와 기념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 4.3 사건을 화해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제주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기념물,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이 설립되었습니다.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다
2003년

그만큼 제주 4.3 사건 투자 보고서, 이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 규정한 재판소는 2003년 10월 15일 확정됐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과거 사건을 재조명한 최초의 법정 보고서였다. 가장 먼저 실현된 제안은 정부의 사과였다. 노문현 대통령은 10월 31일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도민과 제주4.3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제주 4.3 생존자의 증언

윤희춘

"둘째 아들, 아내, 첫째 아들이 모두 내 눈앞에서 끌려갔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슬픔에 잠길 때면 피를 토합니다. 너무 원망스러워서 수백 년이 걸려도 곧 내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어.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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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진행상황

프로젝트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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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Guest
Mar 17, 2024

May peace prev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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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l Won Lee
Chul Won Lee
Mar 17, 2024

Remembering the victims of the Jeju 4.3 tragedy. We must never forget the lives lost and the fight for peace and human rights. My thoughts are with their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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